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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뮤지션 에세이] 취미 - 이능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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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이 얘기하는 음악, 그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뮤지션이 얘기하는 음악,

그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자료제공 : 한국콘텐츠진흥원
글 : 이능룡 (뮤지션, 기타리스트)


몇 주전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을 뵙고 왔다. 당시 우리 학교는 어린 우리 눈에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적인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지는 어수선한 학교였는데 담임선생님은 이 와중에 남다른 철학으로 우리를 지켜주시던 분이셨다. 한 번은 꼭 인사들 드리고 싶었는데 졸업 후 쭉 연락을 못 드리다가 오늘에서야 만나 뵙게 되는 것이었다. 약속 장소인 마포의 작은 중국집으로 향하던 나는 수능 전 선생님의 마지막 국사 총정리가 생각나 새삼 감사의 마음이 듦과 동시에 귀가 몹시 간지러웠다(지각을 하거나 말을 안 들으면 귀를 꼬집는 분이셨다). 막상 만나면 졸업 후 처음 보는 친구들과 선생님을 서로 못 알아보게 될까 봐 조금 걱정이 됐지만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다행히 지각하지 않고 선생님을 뵙고 반갑게 포옹을 한 후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됐다. 멋진 분이셨기 때문에 찾아오는 제자들이 우리뿐이었겠냐 싶었지만 옛 스승님을 찾는 것이 생각만큼 쉽진 않았는지 모습을 보이는 제자들은 흔치 않다고 하셨다.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선명하고 우스운 옛이야기를 나누던 중 선생님은 오늘의 이벤트를 만들어준 우리들에게 선물이라면서 당시 우리 반의 학생수첩을 꺼내 놓으셨다. 담임을 맡게 되면 학생들의 사진과 그들에 관한 간략한 기록을 남기시는데 다른 건 다 버려도 이것만은 버리지 않으신다고... 반갑게 인사했지만 왠지 남아있던 조금의 어색함, 세월만큼 벌어져 있던 낯섦은 이 수첩을 본 순간 날아가 버리고 나는 현재의 시계가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 버린 것만 같았다. 그 수첩에는 인정하기 힘들 정도로 못 나온 고등학생의 증명사진과 당시 집 주소, 전화번호, 그리고 대략의 가정 형편과 가장 친한 다른 반 친구(사고가 터졌을 경우 제일 먼저 연락을 취해서 해결할 수 있는 보험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하신다)가 적혀 있었는데 그중 내 시선을 끄는 것은 '취미 : 음악 감상'이라고 적혀 있는 부분이었다. 별거 아닌 항목, 의례 적게 되는 취미항목, 음악 감상 또한 특별함을 주지 않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이었지만 나에게는 당시 음악 감상이라는 것이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희망이 없었던 중학교 시절의 나에게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보잘것없는 스스로를 조금이나마 지킬 수 있었던 작은 에너지였다. 남들과 다른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는 코딱지만 한 자부심이었고 그것이 자신을 무너지지 않게 해줬다. 학교에서 집은 멀었고 남들은 걸어가는 집을 버스를 타고 모르는 사람들에 빼곡히 둘러싸여 가야 했던 건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좋은 일이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었다. 그런 길에서는 내게 항상 이어폰이 귀에 꽂혀 있었고 눈이 나쁜 나는 안경을 벗고 뿌연 화면 속에서 음악에만 집중했었다. 그 시간만큼은 제일 소중한 마음이 들어 김포공항을 삥 둘러 가는 버스를 일부러 타고 음악 듣는 시간을 늘려서 가곤 했다(또 거대한 비행기를 보면 비현실감이 느껴져 조금 해방감이 들었다). 주로 라디오에서 알게 된 팝가수의 앨범을 사 모으면서 나름의 라이브러리를 만들어 갔고 가끔 의외의 곳에서 좋은 음악을 알기도 했다. 당시에는 시장통 안에도 레코드 가게 하나쯤은 있었는데 우리 동네 시장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는 어떤 형이 추천해준 비틀스 베스트앨범은 빌보드 음악에만 빠져있던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어 밤마다 들으며 비틀스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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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ichelle (Remastered 2009) The Beatles | Rubber Soul (Remastered) 듣기 재생목록에 추가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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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그런 혼자만의 음악생활에 균열이 생긴 것은 오늘 뵙게 된 선생님과 함께 한 그 고등학교 학년 때부터였는데. 신기하게도 그 반에는 음악을 꽤 많이 듣고 자신의 음악적 지식을 자랑스러워하던 친구들이 여럿 모여 버렸고 서로 영향을 주던지 그 영향을 강하게 거부하던지 하는 취미의 대결 같은 것들이 벌어졌다. 나무 책상에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이름(로고)를 새겨 넣고 자리를 옮기면 다른 친구가 그 새긴 자리 옆에 '쓰레기'라고 쓰고 훈계하듯 새 밴드 이름을 적어 놓는 일들이 흔했다. 나도 그 폭풍에서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지켜보는 입장으로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정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세계를 가진 친구를 만나게 됐다. 나를 음악을 단순히 좋아한다 이상으로 만들어 버린 친구였다. 처음에는 서로 겉은 조용하지만 속은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런 서로에 끌리는 것이 당연했다. 또 친구가 되고 그 친구의 취미를 알게 되었을 땐 내가 들어왔던 음악과 다른 차원의 세계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듣던 음악은 지금껏 내가 알 수 없었던 음악이었고 내가 듣던 음악을 우습게 만들 듯이 깊었다. 그 일 연간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나의 음악 세계는 조금 더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주말이면 종로와 강남역으로 나가 씨디를 사고 서로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꼭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가지고 있던 여러 씨디를 내다 버렸다. 마치 가지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새로운 세계와의 충돌이 불러온 반응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고 후회되는 모습이었다.
어찌 되었든 첫 번째 나의 세상에 금이 가고 한 부분이 허물어졌고 그곳에 다른 어떤 것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나를 지탱해준다고 여기던 것이 누군가에 의해 달라지는 것을 처음 경험하게 된 것이었는데 사실 그것을 받아들이기란 너무 어려웠다. 확신을 내려놔야 했기 때문이다. 굉장한 자괴감에 빠져들 때가 종종 있었다. 정확하게 본다고 확신하고 믿고 달려가는 것 자체가 어려워져 버렸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이유는 그만큼 친구의 세계가 매력적이었다. 아무튼 선생님이 선물로 갖고 나오신 그 수첩을 통해서 그 시절 그 한 조각 슬쩍 보고 나니 순식간에 이런 모든 것들이 생각나 버렸다. '취미 : 음악 감상'은 내게 가장 큰 단어였던 것이다. 그 한 해는 내게 너무 소중한 일 년이었다. 새로운 음악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줬고 모르고 있던 세상의 문을 열어줬다.
신기했던 건 그때 이후로 매번 그것이 나에게 벌어졌다는 것이다. 안정을 되찾고 나면 새로움에 자극을 받게 되는 일 생기고 결국 무언가 변화를 경험하는 것 말이다. 밴드를 시작할 때에도 '언니네이발관'을 시작할 때에도 '언니네이발관'의 네 장의 앨범을 만들 때에도 해체가 되었을 때에도 '나이트오프'를 시작할 때에도 모든 것은 여지없이 새로움을 마주하지 않은 면 나아갈 수 없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음악을 계속하게 되었던 것은 어쩌면 운이 좋게도 그 새로움을 마주할 기회가 계속 있었고 자신을 허물어트릴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을 허물 수 없으면 떠나야 했는데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허물어지고 나면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에너지가 남게 되는데 그게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막연히 느꼈다. 좋은 것을 하고 싶다는 것은 분명했으니까 남아야 했다. 이끌리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고 이끌리는 것들에 문을 닫아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런 허물어짐의 처음 시작됐던 고등학교 시절 그 해를 오늘 선생님의 학생수첩으로 슬쩍, 그리고 또렷이 기억하게 된 것이다. 옛날이야기를 모두 왁자지껄 나누고 있는 중에 나는 그때의 기억을 혼자 몰래 계속 꺼내보고 있었다. '아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구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기 전 선생님께 여전히 두렵다고 했다. 현재를 증명하는 것이... 과연 또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지가.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귀가 후에 이런 메시지를 남겨 주셨다. "참 고맙고 감사하다! 건강한 여름, 쫄지 말고, 겁내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야 할 젊음!"


'역시 그 해에 저는 운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멋진 선생님과 친구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이능룡 주요 음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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